[13호/2023/09]13호 [포커스 온 특집] '연관성 초위기' 시대의 지역 참여

평화저널 플랜P
2023-11-29


‘연관성 초위기’ 시대의 지역 참여

글 김용찬 (연세대학교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이야기하기(storytelling)의 능력과 민주적 참여

이야기하기가 시민 참여의 토대이다(Ball-Rokeach, Kim, & Matei, 2001). 한 명의 주민이 자신이 속한 지역 공동체의 주인으로서 공동체의 문제 해결 과정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문제를 인식하고, 그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동기와 그럴 수 있는 역량을 가져야 한다(Kim, 2018). 지역 공동체의 문제를 공동체 밖의 제3자가 먼저 인식하고, 제3자가 주도적으로 이야기하는 상황 속에서, 정작 그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은 그런 인식과 이야기하기의 과정(즉 이야기하기의 동기와 역량)에서 배제되고 있다면, 그런 공동체를 민주적이라고 할  수 없다. 한 사회가 민주화된다는 것은 그 사회의 시민들이 이야기하기의 동기와 역량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들이 누구이고, 누구여야 하는지에 대해, 그리고 자신들에게 어떤 문제가 있고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해 이야기하기는 과정을 통해 시민들은 자신이 속한 지역 공동체의 주인이 된다. 이야기하기 동기와 역량을 상실한 공동체에서 시민들의 민주적 참여를 기대하는 것은 어렵다.


민주적 참여의 기반이라 할 수 있는 이야기하기 행위(storytelling action)는 대개 공동체 차원의 집합적 수준(collective level)에서 이루어진다(Kim, 2018). 즉 그것은 여러 사람이 함께 참여하는 행위인 것이다. 가령 ‘나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은, 나와 타자들이 함께 수행하는, 나에 대한 이야기하기의 유동적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Berger & Luckman, 1966). 즉 이야기하기의 과정이 없다면 자아 정체성 개념을 형성할 근거가 없어진다. 그런데 민주주의적 참여를 위한 토대로서의 이야기하기의 행위는 개인의 정체성을 넘어서서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집합적 정체성을 만들기도 한다. 공동체의 집합적 정체성이야말로 집합적 이야기하기의 과정을 통해서 생산되고, 재생산된다. 한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이야기하기 행위의 동기와 역량을 갖는다면, ‘우리는 누구인가’에 대한 이야기하기를 넘어서서, 지금 여기 자신들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집합적으로 인식하고, 그 문제의 성격이 무엇인지에 대해 집합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이야기를 하게 될 것이다. 또 자신들이 그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있는지에 대한 공동의 신념을 구성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함께 동원할 방법을 논의하며, 집합적 의사 결정을 하는 데에 수반되는 이야기하기 행위를 수행할 것이다.  


집합적 문제 인식(collective problem recognition)과 집합적 문제 해결(collective problem solving)을 위해 공동체적 수준의 이야기하기 행위를 수행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가령 어떤 지역 커뮤니티에 특별한 문제(가령 재개발 문제, 교육 문제, 교통 문제, 치안 문제 등)가 있다고 해보자. 그리고 동네에 사는 사람들 한 명 한 명이 개별적으로 그 문제에 대해 적어도 어느 정도는 인식을 하고 있다 해보자. 문제에 대한 개인들의 인식이 공동체적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그런 인식이 집합적으로도 이루어져야 한다. 즉 한 개인이 자신만 그 문제를 인식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같은 방식의 문제 인식을 하고 있음을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런 집합적 문제 인식은 공동체 구성 주체(개인, 조직 등)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이야기하기 행위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야기하기는 개별적으로 이루어지는 문제 인식을 공동체 수준의 집합적 문제 인식으로 전환 시킨다. 문제에 대한 인식 과정뿐 아니라 문제에 대한 해결 과정에서도 그에 대한 공동체적 수준의 이야기하기가 중요한 토대로 작동한다. 집합적 문제 인식과 집합적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체적 수준의 이야기하기를 수행할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사람들은 그 문제와 관련된 행동에 참여하게 된다. 이런 점에서 참여의 기반은 이야기하기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야기하기의 과정과 참여 과정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가장 명시적으로 이론화한 것은 커뮤니케이션하부구조이론(communication infrastructure theory)이다(김용찬, 2018; Kim, 2018; Kim & Ball-Rokeach 2006). 이 이론에 따르면 지역 커뮤니티 안에서 주민들이 집합적 문제 해결 과정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그 지역 안에 튼튼한 커뮤니케이션 하부구조가 구축되어 있어야 한다.  커뮤니케이션 하부구조는 지역과 연관된 이야기하기를 하는 주체들의 네트워크와 그것을 가능케 하는 물리적, 사회적, 상징적 맥락으로 구성된다. 한 공동체 안에 지금, 여기, 우리와 연관된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역량과 그것을 위한 사회적 조건이 갖춰져 있다면 커뮤니케이션 하부구조가 잘 구축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자신들이 맞닥뜨린 공동의 문제를 쉽게 인식하고, 그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과정에 참여할 준비가 되어있다. 즉, 지금, 여기, 우리와 연관된 것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공동체 수준의 커뮤니케이션 하부구조가 잘 갖춰져 있는 곳에서는 활발한 민주적 참여의 가능성이 크다.  -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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