팍스 코리아나는 엄석대의 꿈을 꾸는가?
글 김치현 (책방 풀무질 대표)
어릴 때부터 몸이 약했다. 마음이 약했다는 말이 더 어울릴지 모른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에 성을 낼 줄은 알았지만 힘으로 싸우는 법은 잘 몰랐다. 싸움이 나면 식은땀이 나고 숨이 가빠왔다. 심장이 빠르게 쿵쾅대느라 꼭 쥔 주먹에는 땀이 배었다. 어린이집과 유치원 대신 태권도 학원에 다녔고,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나서도 꾸준히 다니다 보니 나름대로 겨루기 선수단에까지 입단했다. 그래도 바뀌지 않는 심성이 문제였다. 시합에만 들어가면 벌벌 떨었다. 키는 또래 친구들보다 훨씬 컸지만, 성미가 성마른 탓인지 깡마르고 힘이 없었다. 맞는 것도 무서웠지만, 때리는 것이 더 무서웠다. 결국 중학교에 입학할 때쯤 선수단을 관뒀다. 관장님의 권유도 한몫했다. 시합에서 겁먹는 선수에게 장래는 없었다.
기껏 배운 태권도는 학교생활에서 아무 소용이 없었다. 중학교에 올라가 ‘서열’이라는 개념을 배웠다. 처음 세상의 규칙을 배웠다고도 할 수 있다. 서로를 처음 맞닥뜨린 첫 학기는 혼란 그 자체였다. 눈치가 빠른 친구들은 이리저리 오가며 각자의 위치를 조율했다. 몇 개월이 지나자, 대부분이 동의할 만한 자리가 확실해지고 이내 학교는 평화로워졌다. 그 가운데 눈치가 없는 편이었던 나는 안정된 서열에 도통 적응할 수 없었다. 모든 게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처음 평화에 반발했던 건 단순한 계기였다. 더운 여름, 체육 시간이 끝나고 몇몇 학우들이 에어컨을 가로막고 실컷 바람을 쐤다. 시끌시끌한 교실 뒤로 성큼성큼 걸어가 비키라고 한마디 했다. 그 한마디에 당연했던 평화가 깨졌다. 반 전체가 발칵 뒤집혔다. 지금까지 평화에 동의했던 모든 학우는 이를 이해하지 못하던 나로부터 평화를 지키고자 노력했다. 윽박질러도 보고, 굴리기도 했다. 그때 비언어적 소통과 암묵적 규칙이라는 존재를 배웠다. 하지만 그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하지는 못했고, 낯선 소통 방식에 당황한 나는 가장 커다란 규칙을 어기고야 말았다. 학생 사회에 선생님을 끌어들였다. 그것은 모두가 거부하고 싶지만 거부할 수 없는 더 큰 힘이었다. 중학교에서의 첫 해, 우리 반은 평화롭지 못했다.
이 짧은 경험은 꽤 보편적인 경험이기도 하다. 굳이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한국에서 자란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면 으레 비슷한 경험을 들을 수 있다. 심지어 비슷한 내용의 단편소설은 꽤 유명하다. 이문열 소설가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라는 단편소설로 1987년 이상문학상을 수상한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릴 만큼 수작으로 꼽힌다. 소설에 등장하는 엄석대는 평화로운 반을 만드는 주역이다. 엄석대가 평화를 만드는 방식은 ‘주먹’이다. 그의 주먹은 공평하다. 학교의 평화를 해치는 자에게만 휘두른다. 소설 속 주인공도 처음 엄석대의 학교에 전학해 와서 당황한다. 그러나 이내 엄석대의 평화에 적응한다. 엄석대의 평화가 깨지는 건 더 큰 힘이 들어온 이후다. 새로 온 선생은 엄석대의 평화에 동의하지 않았고, 모든 것을 ‘정상화’하고 싶어 한다. 선생은 엄석대를 모두의 앞에서 두들겨 팬다. 무너지는 엄석대를 본 학우들은 엄석대보다 더 큰 힘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윽고 엄석대의 평화는 새로 온 선생의 평화로 대체된다.
팍스(pax)는 로마 신화 속 평화의 여신으로, 평화(Peace)의 어원이기도 하다. 현대 사회에서 팍스(pax)는 보통 국가의 앞에 붙는다. 한 국가의 힘이 압도적으로 강할 때, 그 국가가 주도하는 평화의 의미로 주로 사용된다. 역사적으로 여러 팍스(pax)가 있었고, 현대 국제 정세는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라고 부를 수 있겠다. 물론 미국의 평화에 동의하지 않는 세력들도 있다. 하지만 나서서 저항하기에는 미국의 무력은 너무 거대하다. 미국의 무력을 지탱하는 건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이기도 하지만 그 근간에는 무엇보다 이 평화에 동의하는 사람들이다. - 중략-
팍스 코리아나는 엄석대의 꿈을 꾸는가?
글 김치현 (책방 풀무질 대표)
어릴 때부터 몸이 약했다. 마음이 약했다는 말이 더 어울릴지 모른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에 성을 낼 줄은 알았지만 힘으로 싸우는 법은 잘 몰랐다. 싸움이 나면 식은땀이 나고 숨이 가빠왔다. 심장이 빠르게 쿵쾅대느라 꼭 쥔 주먹에는 땀이 배었다. 어린이집과 유치원 대신 태권도 학원에 다녔고,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나서도 꾸준히 다니다 보니 나름대로 겨루기 선수단에까지 입단했다. 그래도 바뀌지 않는 심성이 문제였다. 시합에만 들어가면 벌벌 떨었다. 키는 또래 친구들보다 훨씬 컸지만, 성미가 성마른 탓인지 깡마르고 힘이 없었다. 맞는 것도 무서웠지만, 때리는 것이 더 무서웠다. 결국 중학교에 입학할 때쯤 선수단을 관뒀다. 관장님의 권유도 한몫했다. 시합에서 겁먹는 선수에게 장래는 없었다.
기껏 배운 태권도는 학교생활에서 아무 소용이 없었다. 중학교에 올라가 ‘서열’이라는 개념을 배웠다. 처음 세상의 규칙을 배웠다고도 할 수 있다. 서로를 처음 맞닥뜨린 첫 학기는 혼란 그 자체였다. 눈치가 빠른 친구들은 이리저리 오가며 각자의 위치를 조율했다. 몇 개월이 지나자, 대부분이 동의할 만한 자리가 확실해지고 이내 학교는 평화로워졌다. 그 가운데 눈치가 없는 편이었던 나는 안정된 서열에 도통 적응할 수 없었다. 모든 게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처음 평화에 반발했던 건 단순한 계기였다. 더운 여름, 체육 시간이 끝나고 몇몇 학우들이 에어컨을 가로막고 실컷 바람을 쐤다. 시끌시끌한 교실 뒤로 성큼성큼 걸어가 비키라고 한마디 했다. 그 한마디에 당연했던 평화가 깨졌다. 반 전체가 발칵 뒤집혔다. 지금까지 평화에 동의했던 모든 학우는 이를 이해하지 못하던 나로부터 평화를 지키고자 노력했다. 윽박질러도 보고, 굴리기도 했다. 그때 비언어적 소통과 암묵적 규칙이라는 존재를 배웠다. 하지만 그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하지는 못했고, 낯선 소통 방식에 당황한 나는 가장 커다란 규칙을 어기고야 말았다. 학생 사회에 선생님을 끌어들였다. 그것은 모두가 거부하고 싶지만 거부할 수 없는 더 큰 힘이었다. 중학교에서의 첫 해, 우리 반은 평화롭지 못했다.
이 짧은 경험은 꽤 보편적인 경험이기도 하다. 굳이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한국에서 자란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면 으레 비슷한 경험을 들을 수 있다. 심지어 비슷한 내용의 단편소설은 꽤 유명하다. 이문열 소설가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라는 단편소설로 1987년 이상문학상을 수상한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릴 만큼 수작으로 꼽힌다. 소설에 등장하는 엄석대는 평화로운 반을 만드는 주역이다. 엄석대가 평화를 만드는 방식은 ‘주먹’이다. 그의 주먹은 공평하다. 학교의 평화를 해치는 자에게만 휘두른다. 소설 속 주인공도 처음 엄석대의 학교에 전학해 와서 당황한다. 그러나 이내 엄석대의 평화에 적응한다. 엄석대의 평화가 깨지는 건 더 큰 힘이 들어온 이후다. 새로 온 선생은 엄석대의 평화에 동의하지 않았고, 모든 것을 ‘정상화’하고 싶어 한다. 선생은 엄석대를 모두의 앞에서 두들겨 팬다. 무너지는 엄석대를 본 학우들은 엄석대보다 더 큰 힘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윽고 엄석대의 평화는 새로 온 선생의 평화로 대체된다.
팍스(pax)는 로마 신화 속 평화의 여신으로, 평화(Peace)의 어원이기도 하다. 현대 사회에서 팍스(pax)는 보통 국가의 앞에 붙는다. 한 국가의 힘이 압도적으로 강할 때, 그 국가가 주도하는 평화의 의미로 주로 사용된다. 역사적으로 여러 팍스(pax)가 있었고, 현대 국제 정세는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라고 부를 수 있겠다. 물론 미국의 평화에 동의하지 않는 세력들도 있다. 하지만 나서서 저항하기에는 미국의 무력은 너무 거대하다. 미국의 무력을 지탱하는 건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이기도 하지만 그 근간에는 무엇보다 이 평화에 동의하는 사람들이다. - 중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