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호/2022.12][특집/Focus On] 빈곤철폐를 위한 사회연대,불평등이 재난이다 -반빈곤 사회운동단체인 빈곤사회연대가 걸어온 길-

평화저널 플랜P
2022-12-29

글 정성철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


최옥란의 싸움을 시작으로 


한국 사회구조의 체질을 변화시킨 1997년 IMF 외환위기는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사회 위험으로부터 누구나 빈곤에 처할 수 있다는 인식을 확장시켰다. 그러한 흐름 속에서 현재에도 유력한 빈곤 정책으로 작동하고 있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빈곤 문제의 사회적 해결’과 ‘권리로서의 복지’를 내세우며, 2000년 10월 시행되었다. 이전의 빈곤 정책, 공공부조였던 “생활보호제도”가 장애인, 노인, 아동 등 국가에서 노동할 수 없다고 분류한 이들만을 대상으로 시혜적인 측면에서 복지급여를 실시했다면, 기초생활보장제도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확대하며 빈곤에 처한 누구나 신청 가능하게 진일보했다. 기초생활보장제도는 법 제1조에서 “생활이 어려운 사람에게 필요한 급여를 실시하여 이들의 최저생활을 보장”하는 것을 목적으로,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에 필요한 비용”의 급여를 권리로써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회정책이 그렇듯, 법에서 시행령 그리고 사업 안내서로 내용이 구체화되면서 디테일의 악마, 선정 기준들이 법에서 정하고 있는 권리 발현을 가로막았다.


당시 뇌성마비(현재 뇌병변) 중증 장애 여성이자, 청계천에서 노점을 하며 한 아이를 홀로 키우던 최옥란은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시행된 이후 수급자가 되었다. 수급자가 된 최옥란은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낮은 급여 보장 수준의 문제를 사회적으로 문제 제기한 첫 번째 당사자였다. 그는 영구임대아파트 관리비와 연료비로 16만원, 장애로 인한 병원비로 약 20만 원을 월 고정 비용으로 지출하고 있었으나, 2001년 당시의 수급비는 26만 원에 불과했다. 기초생활보장제도는 노동을 통해 얻는 소득만큼 급여액을 삭감하기에 부족한 생활비를 충당할 방법도 마땅치 않았다. 최옥란은 이러한 현실을 고발하며 국무총리에게 수급비를 반납하고, 명동성당 앞에서 최저생계비 현실화를 요구하는 노숙농성을 전개했다. 최옥란은 여러 인터뷰에서 ‘낮은 수급비로 인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집에 누워만 있으면서 유서를 쓴다’고 말했다. 그리고 명동성당 농성을 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은 2002년 3월 26일, 일 년 전 작성해 둔 10장의 유서를 남긴 채 세상을 떠났다.


최옥란의 싸움은 ‘최저생계비 현실화’ 투쟁으로 대표되지만, 현재에도 기초생활보장제도 사각지대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부양의무자 기준과 낮은 재산 기준의 문제 해결을 함께 요구했다. 그리고 ‘기초생활보장제도가 노동 유연화 도입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근거로 작동하고 있다’고 발언하기도 했는데, 이는 기초생활보장제도를 넘어서 2000년대 한국 사회의 금융화와 노동 유연화와 같은 신자유주의 세계화 정책에 대한 비판이었다. 최옥란의 말처럼 불안정 비정규 노동을 확대하며 더 높은 생산성과 자본의 이윤을 최우선으로 하는 한편, 전 국민의 기초 생활 보장이라는 취지를 달성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사회안전망은 빈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확대하고, 더 극심한 불평등 사회로 나아가기에 충분했다. 최옥란의 죽음 이후에도 그의 싸움에 함께 했던 단체들이 기초생활보장제도를 중심으로 한 다양한 생활권 문제를 공동으로 제기하기 위해 ‘기초법 연석회의’를 구성했다. 이는 2004년 노동의 불안정화와 전민중의 빈곤화에 맞서 도시 빈민의 연대를 모색하기 위한 ‘빈곤 해결을 위한 사회연대(준)’로, 2008년 현재의 ‘빈곤철폐를 위한 사회연대’로 이어져 왔다.


사각지대 발굴이 아니라 제도의 변화가 필요


기초생활보장제도는 2015년 6월 급여별로 선정 기준을 달리하는 ‘맞춤형 개별급여’로 개편되었다. 2014년 2월 송파에 살던 세 모녀의 죽음 이후 당시 대통령이었던 박근혜 씨는 ‘있는 제도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서’ 발생한 문제라며 더 많은 사각지대를 발굴하기 위한 정책 변화를 추진했다. 이른바 ‘송파 세 모녀 법’이라는 이름으로 ‘기초생활보장법’과 ‘긴급복지지원법’을 개정하고 ‘사회보장급여법’을 신설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전자 법안들의 개정이었지만, 초점은 사회보장급여법에 맞춰졌다. 이것이 현재 가난한 사람들의 죽음이 사회적으로 알려졌을 때 주로 논의되는, 가난한 사람들의 더 많은 민감정보를 수집하겠다는 ‘발굴’의 근거가 되는 법이다. 하지만 이후 언론을 통해 밝혀졌듯, 송파 세 모녀는 생전 동사무소에 도움을 청했지만 이용할 수 있는 복지제도가 없다며 구두 거절당했었다. 2014년 송파 세 모녀로부터 2022년 수원 세 모녀까지, 비극이 반복되는 이유는 자명하다. 지난 8월 이종성 의원실에서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에서 7월까지 복지 사각지대 발굴 대상자로 선정된 52만 3,900명 중 기초생활보장제도나 긴급복지지원제도로 연계된 비율은 3.3%에 불과하다. 절반에 가까운 48.2%는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했으며, 38.3%는 쌀이나 라면 등 일시적으로 물품을 후원받는 민간지원으로 연계되었다. 놀랄만한 결과지만 새로운 사실은 아니다. 과거 복지부가 발표한 자료들을 살펴보면, 2017년 발굴된 위기 가구 30만여 명 중 2.6%, 2018년 발굴된 위기 가구 24만여 명 중 2.9%만이 기초생활보장제도와 긴급복지지원제도 같은 공적 복지로 연계되었다. 정부도, 복지부도, 사회복지 전문가들도 그리고 실제 복지제도가 필요한 사람들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발굴해도 발굴되어도 이용할 수 있는 복지제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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