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호/2023.03][전문공개/P-word특집] 동북아 전쟁위기와 조기경보의 필요성

평화저널 플랜P
2023-03-16


동북아 전쟁위기와 조기경보의 필요성

 

글 이대훈 (피스모모 평화/교육연구소 연구소장)

 

멀리 유럽에서의 전쟁을 알리는 언론 보도에서 일관되게 언급하지 않는 부분은 전쟁이 불러오는 생태위기이다. 또 이 전쟁이 동북아시아에 어떤 위기를 불러오고 있는지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오늘날 우리는 안보 위기와 생태위기가 동시에 심화 되는 이중 위기의 블랙홀에 빠져들고 있다. 이 복합 위기는 영향이 훨씬 크고 대응이 더욱 어려운데, 사람들의 알아차림이나 정부와 시민사회의 대응이 매우 더디다. 때로는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두 위기가 상호 작용하는 것은 분명하다. 안보 위기는 생태 관리를 불가능하게 만들고 이중 삼중의 환경 오염과 제도 파괴를 야기한다. 군사적 해법은 생태 관리를 위한 관심과 자원 분배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더구나 대부분의 사회가 평소에 군사 부문이 야기하는 어마어마한 생태파괴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다. 한국과 동해에서 거의 매년 벌어지는 세계 최대 규모의 군사훈련이 야기하는 생태파괴는 감시되지도, 측정되지도, 회복되지도 않는다.

 

우크라이나에서의 세계적인 군사충돌로 인해 안보 상황이 세계적으로 매우 암울해졌을 뿐만 아니라, 전쟁 저널리즘이 가지는 흡인력 때문에 사회적 관심이 군사 분야에 집중되면서 군사-생태 복합 위기에 대응하려는 선한 시민들의 의지와 동력 또한 약화될 우려가 크다.

조기 경보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금부터 5년 전인 2018년, 유엔 사무총장 안토니오 구테흐스는 <우리 공통의 미래를 보장하기: 군비축소 의제>라는 보고서를 발간하여 큰 경종을 울린 바 있다. 21세기 최초의 우리 모두의 위기에 대한 묵직한 조기 경보라고 할 수 있다. 이 보고서를 군비증강과 무력 갈등의 증대, 전쟁위기 상황에 본격적으로 경종을 울리는, 글로벌 위기에 대한 조기 경보로 읽어야 할 필요가 보인다. 이는 마치 4년 후 우크라이나 무력 충돌과 같은 상황을 예견하고 예방하려고 했던 것으로도 읽힌다.

 

동북아시아와 같이, 역내 모든 국가가 역사상 최고 수준의 군비증강과 군사훈련을 벌이고, 대화 단절과 적대감 고조를 경험하는 곳에서 군비축소는 모두가 가장 관심을 가져야 할 핵심 평화 의제인데, 오히려 그에 대한 관심과 행동이 가장 적다. 크게 우려스러운 일이다. 보고서는 군비경쟁의 상황을 파국적이라고 파악한다.

“냉전 시대의 긴장이 훨씬 더 복잡하고 위험한 환경에서 부활했습니다. 무력 충돌이 더 자주, 더 오래 발생하고, 민간인에게 더 파괴적으로 변했습니다. 한 나라의 내전은 지역적(regional), 세계적 세력 경쟁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내전에는 폭력적인 극단주의자, 테러리스트, 민병대, 범죄 집단 등 많은 행위자들이 다양한 종류의 무기로 무장하며 개입합니다. 국제 체제의 거버넌스도 매우 복잡해지면서 이해관계가 다변화, 복잡화되었고, 이로 인해 합의에 기반하는 군비축소 과정이 도전받고 있습니다. 안보 불안이 야기하는 비용은 막대하여 다종다양의 폭력을 억제하는데 사용된 비용이 2017년 세계 총생산의 8분의 1을 넘었고, 세계 군사비 지출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습니다. 새로운 무기 기술은 비국가 행위자가 국경을 넘어 공격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포함하여 위험(risk)을 증가시키고 있습니다. 최근의 많은 분쟁에서 인도법은 무시되었고 화학무기와 같은 금지된 무기가 전장에서 사용되었습니다. 도시에서 사용되는 재래식 폭발물은 민간인과 민간 지역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현재 상황에서 지역적, 세계적 군비축소는 여러 과제 중의 하나가 아니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삶을 계속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기 때문에” 첨단 무기와 인공지능 기반 신무기, 우주 기반 신무기 등에 대해 경계하고 통제하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화와 안보를 위한 우리 공동의 노력에서 군비축소를 다시 중심에 두어야” 한다는 이 보고서의 호소는, 세계 다른 지역에서도 대체로 무시되고 있지만, 동북아시아에서는 극단적인 모습으로 역행하고 있다. 우리는 동북아시아 복합 위기의 핵심을 군비축소의 부재에서 찾을 필요가 있다.

 

이와 비슷한 글로벌한 조기 경보로서 세계은행과 유엔이 공동으로 발행한 <평화의 경로>라는 연구서가 있다. 이 보고서는 분쟁과 불평등을 서로 다른 것으로 보고 별도로 대응하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는 고백을 세계은행이 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는 폭력적 분쟁이 세계적 불평등과 빈부격차, 국가의 국내 정치 실패에 기인한다는 고백이다. 즉, 분쟁은 불평등과 배제의 현상이자 실체라는 것이다. 더불어 21세기 세계 여러 지역에서 불평등과 분쟁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위기라는 점을 다급하게 알린 것이다.

이 연구서 역시 우크라이나 사태와 같은 강대국 대리전이 21세기 현대의 중요 현상의 하나로 회귀할 것으로 예견하고 있다. 또 경제적으로 부유하든 아니든, 국내에서 포용적 정치가 실패할 경우 어떻게 내전 상태로 붕괴할 수 있는지도 상술하고 있다. 아울러 “젠더 불평등과 젠더 기반 폭력이 높은 사회일수록 내전과 국가 간 전쟁에 대해 더 취약해지고 분쟁 발생 시 더 심각한 형태의 폭력을 사용한다는 관련성을 발견”한 점과 “가정 폭력의 증가 또는 여성 아동의 학교 출석률 감소와 등 여성 지위의 약화 또는 취약성의 증가는 종종 사회적 및 정치적 불안정에 대한 조기 경보로 간주”된다는 점도 강조한다.

 

동북아시아는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 발발과 거의 같은 시기에, 또 이 전쟁과 연동되어 매우 빠른 속도로 군비경쟁과 군국주의 정치, 강 대 강의 대립노선이 부활했다. 북한의 군사행동만 문제라고 표현하는 것은 사태에 눈을 감은 것과 같다. 작년 일본은 전후 최대의 군비증강과 전후 처음으로 “적 공격능력” 회복을 결정했고, 한미일은 핵전력을 포함하는 거의 무한대의 공격적 군사훈련을 동해와 한반도에서 전개하기 시작했다. 북한 이에 맞춰 매우 다양한 미사일 실험과 배치를 가속화 했다. 이와 동시에 대만 해협과 남중국해에서 미중 군사충돌이 빈번하게 일어나, 언제 실제 군사행동이 발생해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 되었다. 동북아시아에서 한국전쟁 이래로 최대 규모로 핵무장 국가들의 군사행동이 전면화되고 있는 반면, 대다수 국가의 언론과 정치는 이러한 군국화와 안보 위기에 대해서 안일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거나 ‘북한 도발’이라는 프레임의 확대에만 주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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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가 파국으로 치닫지 않게 하려면 예방이 우선이라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갈등 예방, 분쟁 예방의 상식을 회복해야 한다. 복합 위기의 시대에는 예방도 복합적이어야 하고 체계적이어야 한다. 위기와 분쟁을 예방하기 위해서 편리하게 관용이나 대화와 같은 단순한 원칙을 앞세우는 것보다, 그동안 축적된 평화구축 지식과 경험을 활용한 보다 체계적인 준비와 대응이 필요하다.

 

우선 과거에도 그랬지만 전쟁은 야만이며, 특히 21세기 전쟁이 허용될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해야 한다. 전쟁 불가, 전쟁 준비 불가의 원칙을 수립해야 한다. 그 이유는 현대 전쟁의 결과가 회복 불가능하기 때문이고, 보편적 인권과 모든 정의에 위배 되기 때문이며, 모든 전쟁이 인공지능 무기 및 핵무기와 연동되어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상식으로, 군비축소를 평화의 주 의제로 삼아야 한다. 칼로 흥한 자는 망하게 된다. 칼로 흥하면 많이 죽고 다친다. 특히 현대의 군비경쟁은 지구촌 전체를 파국적이며,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 만들 수 있다. 군사화의 비용과 군사 활동의 생태파괴 비용은 상상을 초월한다. 작은 군사행동이라도 지역에서 절실히 필요한 국제 제도와 협력을 약화시켜서 복합 위기에 대한 협력적 대응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임박한 글로벌 복합 위기를 알리고, 동북아시아가 그 최대의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지역이므로 동북아 모든 국가에서 군비축소가 필요하다는 조기 경보를 발할 필요가 있다.

 

세 번째 상식으로 분쟁이나 갈등이 발생하기 전에 예방하는 것이 훨씬 더 큰 이익이라는 원리를 확산시켜야 한다. 지금 동북아에서 증대되는 강 대 강의 세력 과시는 파국의 징후에 가깝다. 예방 담론과 예방 조치를 매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위기의 심화 상황에서는 갈등 예방이 최고의 정의이다. 그리고 갈등 예방은 강 대 강 전략에 비해 도덕적,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부문, 모든 면에서 이점과 우월성을 가진다. 현대 군사력이 동원된 무력 충돌이 야기하는 인간과 공동체의 파괴, 생명 손실은 과거와 다르다. 지금까지 축적해온 일말의 지속가능성도 무너뜨린다. 무엇보다 무한대 군비경쟁 상황에서, 그리고 현재와 같은 세계적 분열 양상에서 갈등 예방은 모두의 인권이다. 그리고 모두의 인권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생명권과 안전을 보장하는 길이다.

 

갈등 예방이란 폭력적인 분쟁을 일으킬 수 있는 다양한 잠재적 요인을 선제적으로 무력화하기 위해 전개되는 노력을 말하는데, 평화구축 분야에서 다양한 활동과 방법, 지혜가 축적되어 있다. 분쟁 지역에서는 협상과 외교, 신뢰 구축 조치와 인도적 접근, 비군사적 방법의 우선성을 사용한다. 그다음 이해 불일치의 근본 원인에 대처하는 구조적 예방을 추진하고, 지속 가능한 평화 정착을 위해 제도의 변화와 시민 의식의 변화를 추구한다. 갈등 예방은 한 나라 안에서도 포용적 정치, 대화의 정치, 분열의 예방 효과를 갖는다. 반면 군사 노선과 대결 이념은 그 사회를 내적으로도 분열시키고 적대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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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시아 군비경쟁과 군사행동 증대에 주목하자. 남북한을 포함한 동북아 모든 국가가 개입된 군사적 갈등이 격화될 가능성에 대해 검토해야 한다. 시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강 대 강’ 구도의 불안을 중시하며 판단하고 행동해야 한다.

 

지금 동북아시아에서는 악마화, 적대화의 언어가 누적되고, 모든 방향에서 전쟁 연습이 계속되며, 서로에 대한 불신이 축적되고 있다. 이렇게 군사적 긴장이 고조된 상황에서는 아주 사소한 계기도 큰 전쟁의 불씨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분단 상황에 익숙한 한국 사회는 이 군사적 긴장을 익숙한 일상으로 받아들이는 듯하다. 더구나 남북한은 두 개의 국가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동북아 지역의 세력 경쟁의 일환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래서 분쟁도, 평화도 한반도로 국한될 수 없는 상황이다. 지금은 ‘한반도 평화’가 아니라 ‘동북아 분쟁 예방’을 위해 행동할 때이다.

 

동북아 군사충돌 위기를 심각한 ‘위기’로 인지하고 분쟁 예방을 최우선으로 고려하고, 한반도 평화를 넘어 동북아시아의 군사충돌 예방을 함께 준비해야 하며, 동북아의 군사적 긴장은 특정 국가의 책임이 아니라 모든 국가의 책임과 상호작용임을 인식해야 한다.

 

모든 분쟁은 상호작용이다. 한 측 때문에 발생하는 일은 거의 없다. 아마도 한번 발생하면 회복 불가능한 수준의 군사적 충돌 위기가 동북아시아에 오고 있음을, 그리고 모든 국가와 시민이 동시에 책임을 가져야 함을 시민들의 조기 경보로 널리 알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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