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호 / 2023/12][14호 / 이슈 1] 미디어가 말하지 않는 평화

평화저널 플랜P
2024-01-25

 

미디어가 말하지 않는 평화

 

글 김 상 덕(연세대학교 강사, 플랜P 편집위원)

 

여는 말_ 폭력으로 점철된 미디어 세상


‘왜 뉴스에는 폭력적인 소식들로 가득할까? 언론에 비친 세상은 온통 부정적인 것 투성이야!’

현대인에게 뉴스를 보는 것은 삶의 일부분이 되었다. 우리는 뉴스를 통해서 우리 사회에 대해 배우고 경험한다. 문제는 뉴스가 전하는 소식이란 게 주로 폭력적인 것들로 가득하다는 것이다. 정치인이야 원래 ‘싸우는 사람’이 된 지 오래되어 이제는 믿고(?) 거른다지만, 그밖에 좋은 소식 듣기란 흔치 않다. 반면, 끔찍한 범죄 소식부터 ‘묻지마 폭행’에 이르기까지 갈수록 혐오와 갈등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듯 보인다. 뉴스 보기가 꺼려질 정도다. 국제 뉴스에서는 국가 간의 전쟁 소식이 연일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이로 인한 민간인 피해 규모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처음에는 놀라며 걱정하지만, 비슷한 장면들을 반복적으로 보면서 현실감마저 떨어진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는다면, 뉴스 속 전쟁의 소식이 지금 동시대에 벌어지는 끔찍한 현실이며, 누군가에겐 지옥 같은 일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조차 잊고 지내기 십상이다. 한편으론 이런 끔찍한 소식들을 보고 싶지 않지만, 다른 한편으론 그래도 우리 사회의 각종 범죄와 폭력, 전쟁을 알리고 이에 대해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마음으로 모니터를 응시한다.

 

미디어는 왜? 재현된 진실과 배제된 진실

 

도대체 왜 미디어는 폭력적이고 부정적인 것들만 보도하는 것일까? 누군가는 언론 미디어 자체가 태생적으로 자본에 의해 조직되거나 운영되는 자본주의 산업의 일부라는 점을 지적할 것이다. 따라서 많은 사람이 좋아하고 궁금해하는 소식을 좇는 경향에서 발생하는 자극적이고 경쟁적인 보도 행태와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한 선정주의는 어쩔 수 없는 한계라고 말이다. 또 누군가는 미디어 자체가 결국은 어떤 식으로든 특정 집단이나 국가의 경계 안에서 제작되기 때문에, 결국 국가주의적 논리와 경쟁, 갈등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점도 지적할 수 있다. 마치 국제사회에서 모두가 평화를 말하지만, 그 이면으로는 각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두면서 항상 최악의 경우를 대비하는 현실주의적 원칙과도 유사하다. 이런 맥락에서 평화라는 말은 이상적이고 순진한 생각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그런데, 미디어가 보여주는 세상이 다가 아니라는 점을 반드시 기억할 필요가 있다. 미디어가 재현하는 현실은 모든 현실을 다 보여주는 것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일부의’ 현실을 특정한 관점에 따라 보여주는 것이다. 미디어가 재현하는 세상 이면에는 미디어가 말하지 않는 현실, 즉 배제된 현실이 존재한다. 이 과정에는 미디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뉴스거리)을 선택하고 배제하는 일련의 편집 과정이 작동하고 있다. 즉, 미디어가 평화를 말하지 않는 이유는 이 세상이 폭력으로 가득하고 평화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폭력과 전쟁의 소식을 알리는 것이 더 시급하고 중요해 보이기 때문이다. 서두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언론의 전쟁 보도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한가?’하고 따져 물을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전쟁을 보도하는 것만으로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는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우선, 미디어의 재현이 뉴스 시청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 뉴스 미디어가 재현하는 사회는 ‘세상이 지금 폭력과 전쟁으로 신음한다’는 직접적인 메시지 외에도 보이지 않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런 뉴스에 지속적으로 노출된 시청자들은 ‘세상은 원래 폭력적이며, 인류 역사에서 전쟁이 멈추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에 원하든 원하지 않든 영향을 받게 된다. 폭력과 전쟁이 마치 자연의 상태처럼 당연하다는 관점이 무의식적으로 형성되는 것이다. 이런 무의식적 담론은 국제사회 속 현실주의적 평화론을 구성하는 데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어차피 일어날 것으로 예정된 전쟁에 대한 최선의 대응은 강력한 방어와 철저한 보복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즉, 폭력의 순환은 계속된다.

 

둘째, 미디어가 재현하는 세상이 폭력과 전쟁으로 가득해도, 그것이 우리 사회에 실존하는 평화의 노력과 목소리가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평화의 이야기는 작고 희미하여 잘 들리지 않고 눈에 잘 보이지 않는 특성이 있다. 폭력이 거센 파도와 폭풍우와 같다면, 평화는 잔잔한 시냇가에 산들거리는 바람과도 같다. 종교와 평화를 주제로 약 3년의 대화를 글로 펴낸 책이 있다. 그 책의 이름은 《지속적 폭력과 간헐적 평화》(모시는사람들, 2020)이다. 평화에 관한 책이지만, 폭력은 구체적이면서도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반면, 평화는 모호하고 간헐적인 것처럼 여겨진다는 통찰을 담고 있다. 특히, 미디어가 재현하는 세상은 더욱 그러해 보인다. 따라서, 폭력의 가시성에 비하여 평화의 비가시성은 우리로 하여금 평화를 희미하고 불분명한 무언가로 여기게끔 한다. 그러나, 미디어가 재현하는 진실은 일부분일 뿐이다. 오히려 진실은 정반대에 가깝다.

 

엘리스 볼딩(Elise M. Boulding, 2000)은 그녀의 책 《Cultures of Peace: The Hidden Side of History》에서 오늘의 역사를 전혀 다른 관점으로 해석한다. 그녀는 우리 사회가 수많은 폭력과 갈등에도 불구하고 이만큼 평화로운 것은 평화를 위한 인류의 지속적인 노력과 실천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다만 그것은 보이지 않고 가려진 상태인 경우가 많으며, 주로 일상적인 영역에서 이뤄지는 특성 때문에 그 중요성을 잊곤 한다. 이 감춰진 평화의 이야기는 공적이기보다 일상적이고, 국가적인 영역보단 지역적으로 발생하며, 중요한 법이나 정책의 이야기가 미처 다루지 못하는 현실의 영역에서 발생하는 것들이다. 그런 이유로 미디어의 관심사로부터는 덜 중요하게 보일 수 있지만, 정작 평화는 일상적이고, 지역적이며, 현실적인 삶의 순간순간에서 끊임없이 발생하는 것이다. 마치 샘물처럼 말이다.  -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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