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호/2021.06][전문공개/특집Focus on] 분단된 마음과 혐오에서 평화정동으로

평화저널 플랜P
2021-06-22

1. 이 글은 “혐오정동의 분단된 마음 정치학”(<여성학> 37권 1호, 2021)의 일부 내용을 재구성한 것이다.


김엘리 피스모모 평화페미니즘연구소



분단사회에서 구조화된 감정은 어떤 것일까?

유월은 온다. ‘우리 어찌 이날을 잊으랴’라는 6·25전쟁 노래가 어김없이 반복 재생되는 달이다. 그 노래의 음을 하나하나 짚었던, 내 어릴 적 청아한 풍금 소리도 귓가에 들린다. 우리는 매년 그 노래를 부르며 성장했고, ‘원쑤’라는 노랫말은 허공을 맴돌았다. 우리는 70여 년 동안 어떤 마음으로 살아왔을까? 분단사회에서 누군가를 증오하고, 적대하며 불안한 시간을 보냈다. 그 마음은 비단 특정한 개인이 겪는 정신적 상해가 아니라 오랜 시간 영근 한국 사회의 감정 구조이다. 남한과 북한이 군사적 대립을 이룬 가운데 언제 일어날지 모를 전쟁의 공포는 상존했고, 적대감은 우리를 구성하는 일부가 되었으며, 누군가를 감시하고 의심하는 가운데 불안감은 주조됐다. 우리의 역사를 떠올려보자. 미군정시기, 6·25전쟁, 군부독재정권, 신자유주의 시대를 거쳐 구성된 남한 사람들의 마음은 단순히 북한을 향한 외부적 감정이 아니라 적을 이롭게 하지 않아야 한다는 자기검열 속에서 특정한 사유와 행위로 구성됐다. 불안과 공포, 적대감은 반공 궐기대회, 반공 웅변대회와 문예활동, 학교교육뿐 아니라 여러 공간에 설립된 전쟁기념관과 기념탑, 건축물, 그리고 영화와 만화, 포스터, 삐라 등을 경유하면서 남한 사람들이 공유하는 집합적 감정 양식이 되었다.2

차이와 다양성보다는 일치와 통합을 위해 동일성을 추구한다든가 민족주의에 대한 과도한 감성과 함께 군사주의에 조응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감정은 개인이 느끼는 것이지만 사회를 특정한 방식으로 조직하고 움직이고 재생산한다. 타자들과의 사회관계에서 형성되고, 그 사회의 규범에 영향을 받아 움직인다. 사라 아메드Sara Ahmed는 감정을 ‘몸과 대상 사이의 접촉contact을 통해 몸이 특정한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하는 힘’이라고 말한다. 거기에는 압축된 문화 의미들이 일어나고 사회 규범이 작동하는데, 이는 몸들 사이의 근접성을 다르게 배치한다. 적대감과 혐오 같은 감정은 몸들 사이의 거리를 넓히며 긍정적 감정들과는 다른 규범적 사회공간을 생산한다.3

말하자면, 감정은 특정 집단들 사이에서 “형성되고 공유되며 전달되는 산 경험”이자 “집단의식 속에 견고하고 분명하게 나타나는 사회·역사적 현상”4 이다. 감정은 머물지 않고 유통되고 소비되면서 그 가치를 증폭시킨다. 한국 사회를 구성하는 한 부분에는 이렇게 남북한의 군사적 대치 속에서 역사적으로 구조화된 감정이 있다. 이 구조화된 감정은 남과 북의 분단으로 인해 생성된 마음이면서 동시에 분단을 지속시킨다. 이 글은 이를 ‘분단된 마음’이라고 부른다. 


분단된 마음 

분단된 마음은 불안감, 공포, 적대감 등 여러 감정들이 중복되고 중첩된다. 이 감정들은 서로 연결돼 있고 서로 자극한다. 분단 때문에 형성된 적대성은 분노, 원한, 증오, 혐오의 형태로 분출되거나5 여러 감정 중에서 혐오와 분노가 으뜸임을6 밝히는 연구도 있다. 그러나 각각의 감정들은 맞붙어 작동하기도 하고 제휴하기도 하고 모순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특히 혐오와 적대감은 유사한 원리를 공유한다. 

그중 하나가 정체성의 정치이다. 혐오 발화는 ‘우리’와 ‘그들’을 구별하고 차이를 만들면서 그들의 속성을 부여한다. ‘그들은 무엇이다’는 정체를 규정하며 편견을 퍼뜨린다. 그리고 자신들과 국가가 당하는 고통의 원인을 ‘그들’에게 돌린다. 적대감도 마찬가지이다. 적대감을 지속적으로 창출하는 군사주의를 통해 살펴보자. 군사주의는 적의 존재를 창출하고 적대감을 만들면서 ‘적, 그들은 무엇인가’라는 설명을 통하여 적과 우리를 대별한다. ‘적’은 난폭하고 폭력적이며 평화를 파괴하는 반면, ‘우리’는 평화를 지향하며 질서를 수호하는 의로운 집단으로 특성화된다.7 적을 상정하고 규정하는 일은 단순히 적을 말하는 일이 아니라 ‘우리’는 순수하고 선하고 의로운 존재임을 표명하는, 즉 우리를 정체화하는 과정이다. 그런데 ‘우리’는 특정한 집단을 부정하고 적대하면서 자신을 정체화하니, 적의 존재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불안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그뿐 아니라 ‘우리’는 적을 이롭게 하지 않아야 한다는 지속적인 자기검열을 하면서 강박과 불안증으로부터도 자유롭지 못하다. 

또 하나는, 동일성과 동질성, 순수성의 보존이다. 혐오는 ‘우리’의 순수성과 동질성을 지키기 위해 ‘그들’을 오염의 근원으로 간주하고 그들을 밀어내는 감정 구조이다. 민족이나 국가의 동질성을 수호하고 젠더 질서를 유지하며 문화적 순수성을 보존하기 위해 특정 집단의 문화를 배제한다.8 여기서 혐오가 일어나는 지점은 차이를 경계로 바꾸는 경직된 영역에서 정치적 이념이 작용하면서이다. 혐오는 안과 밖의 경계를 흩트리면서 기존 질서를 혼란하게 한다고 판단될 때 투사되는 불안감의 발로이다. 분단된 마음의 적대감도 유사하다. 특히 군사주의적 적대감은 적을 섬멸하거나 정복하여 ‘우리’ 안으로 포섭하려는 사회적 에토스이다. 차이를 ‘우리’의 안으로 포섭하여 동질화하고 ‘우리’의 순수성을 유지하려 한다. 이때 군사적 방법이 효율적이라고 여기는 사유와 언행, 지향을 신시아 인로 Cynthia Enloe는 ‘군사주의’라고 말한다.9 


혐오 발화는 분단된 마음 자장 안에서 

최근에 ‘혐오’라는 단어는 한국사회를 설명하는 주요한 핵심어다. 여성과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비하와 차별, 적대감이 사회적 징후로 주목받을 만큼 부상했다. 혐오 감정은 자신이 오염될 것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하여 특정 집단을 구별 짓고 배척하면서 분리와 차별, 폭력을 일으키고 정당화한다는 점에서 여타 감정들의 속성과 구별된다.10 사회적 정의를 이루는 확장적 감정의 동력이 아니라 위축시키는 분리와 해악의 감정인 것이다. 그런데 혐오 발화는 단순히 1987년 이후 민주화 체제의 실패와 신자유주의의 경제적 불안과 위기라는 맥락에서 일어나지만은 않는다. 분단사회와 냉전체제라는 역사성과 무관하지 않다. 혐오 발화는 분단된 마음 자장 안에서 일어나고, 동시에 분단을 지속시키는 감정 에너지이다. 혐오 발화자들은 여성과 성소수자, 이주자,지역주민, 정치인 등에게 각기 개별적으로 혐오 발화하는 듯이 보이나 혐오 대상들에 대한 감정들은 서로 엮여 있고, 유사한 의미 계열을 이루며 담론 구조를 공유하고 있다. 일간베스트(일베)는 경제 발전을 이루었던 과거를 소환하며 위대한 조국 재건을운운하는 한편, 진보 세력을 종북으로 등치한다.11 그런데 페미니즘과 여성 이슈가 북한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지는 않으나 좌빨이나 종북 프레임 안에서 거론되는 것은 혐오 대상자들과의 상관성으로 동일 계열로 취급되기 때문이다. 태극기 집회의 참여 집단들이나 일부 기독교 근본주의자들, 안티페미협회와 같은 단체들과 우익 보수 논객들이 빨갱이 혹은 종북페미, 종북게이를 발화하는 배경은 다를지라도 그들의 정치적 서사구조는 꽤 유사하다. 가족해체와 한국적인 것(민족), 그리고 국가안보라는 요소는 서사의 기본 토대를 이룬다. 이러한 노출은 혐오 발화가 분단사회에서 구조화된 감정에 깊이 착종되어 있음을 함의한다.

그렇다면, 혐오 발화가 분단을 소환하며 분단된 마음 자장 안에서 일어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하나는 분단 권력이다. 분단 자체가 혐오 발화를 촉진하거나 효력을 발현하는 것은 아니다. 분단은 안보 담론으로 프레이밍되고 소비되면서 권력으로 작동한다.12 이를테면 분단은 일반 사회 법체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군형법상 추행죄가 존속해야만 하는 근거로서 항상 소환되고 국가안보의 위해인가 아닌가를 논하는 알리바이가 된다. 분단은 안보로 번역되어 소비되는 것이다. 여성과 동성애자들에게 빨갱이나 종북게이라고 호명할 수 있는 것은 역사적으로 공유된 분단 권력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음을 말한다. 혐오 발화자는 빨갱이와 종북게이를 반복적으로 인용함으로써 분단 권력을 행한다. 그래서 분단은 지속되고 재생산된다. 또 하나는 분단된 마음의 수행과 그 수행의 효과로서의 주체 생산이다. 빨갱이라고 발화하면 분단된 마음을 수행하는 것이자 분단 권력을 행하는 것인데, 이는 반공국가의 국민을 생산하는 효과를 낸다. 분단된 마음은 남한 사람들의 사유와 언행을 특정한 방식으로 조직하고 이끄는 행위 양식으로 개인이 분단된 마음의 주파수에 자신을 조율하도록 하는 구속력을 지닌다.13 이것이 신자유주의 시대에서 특정한 위기와 만나면 불안을 일으키고, 불안은 특정 집단을 끊임없이 타자화하고 공격하는 정서적 기제가 된다. 때로 불안증은 빨갱이와 종북게이, 종북페미로 몰아가는 망상으로 나타난다.


젠더화된 적대감, 죽여도 되는 빨갱이

적대감은 단순히 북한과의 대립에서 파생되는 감정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구성된다. 선재하는 적의 존재성이 불러일으키는 감정이 아닌, 국가안보와 통합을 위해 적을 상정하고 조성된 감정인 것이다. 교육과 전시, 박물관, 노래, 글쓰기, 의례 등 다양한 장치를 통해서 적대감은 조성되고 실행된다. 혐오도 마찬가지다. 적대감과 혐오는 갑자기 분출되는 것이 아니라 미리 정해진 양식, 연상과 이미지들, 범주를 나누고 평가하는 인식 틀 안에서 일어난다.14

한국사회에서 적대감이 구체화된 언어인 ‘빨갱이’도 역사적 사건과 이미지들 안에서 재현됐다. 분단사회에서 빨갱이라는 호명은 역사적으로 우리가 아닌 존재들을 적이나 이단으로 만드는 데 사용됐다. 빨갱이는 종북게이, 종북페미와 현재 혼용되지만 그 담론의 의미를 달리하면서 변용됐다. 뚜렷한 현상은 빨갱이 담론이 국가의 차원에서 생성되었으나 신자유주의 시대에 오면서 시민들 간에 유통되는 양상을 띤다는 점이다. 한국사회에서 빨갱이는 일제 강점기의 ‘아카’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다고 보는데, 초기 빨갱이는 특정한 집단을 배제하고 배격하는 대상으로 타자화하며 정치적 낙인의 의미가 있었다.15 그런데 역사적으로 빨갱이가 ‘죽여도 되는 존재’ 혹은 ‘죽여야 하는 존재’로 그 의미가 변용된 계기는 여순사건이다.16

제주 4·3사건에 투입될 14연대 하사관들이 파병 명령을 거부하며 봉기를 일으켰고 이 봉기는 여수와 순천 지역주민들의 참여로 확대되었는데, 그들은 인간의 존엄성을 박탈당한 채 죽여도 되는 빨갱이가 되었다. 배제의 대상에서 섬멸해야 할 대상으로 전환된 이 인식론적 변화는 빨갱이의 의미가 생성되고 증폭되면서였다. 당시 여순 봉기 사건의 진상을 규명한 문인조사반원들이 남긴 글들은 빨갱이가 무엇인지 그 속성을 규명하는 효과를 낳았고, 반복되고 증폭되면서 빨갱이의 실체를 형상화하는 전거가 됐다.17 빨갱이는 여순사건을 경유하면서 속성을 지닌 실체로 가정되었고, 반공주의 국가를 탄생시키는 토대가 된 것이다. 그런데 빨갱이의 승인을 촉진하고 강화했던 것은 여학생 부대 일화였다.18 여학생이 군경을 유인한 뒤 치마 속에 감춘 총을 꺼내 쏜다는 일화는 실제 일어나지 않은 사건이었으나 당시 시민들에게 공포와 두려움을 주었다. 여성의 유혹으로 예기치 않은 죽음에 이를 수 있다는 이야기는 유혹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한편 사람들의 불안을 담고 있었다. 그러니 불안에서 벗어나는 길, 유혹당하지 않고 반공주의자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길은 빨갱이를 섬멸하거나 정복하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죽여야 하는 빨갱이는 여성의 몸으로 구체화되었다. 여성화된 빨갱이는 유혹적이지만 치명적인 속성을 지닌다. 불순한 균이 내 몸에 침투하듯 우리는 오염될 수 있고 죽음에 이를 수도 있음을 함의한다.

반공주의를 남성적 성적 환상으로 풀어낸 빨갱이 담론은 여성에 대한 매혹과 혐오를 그대로 드러낸다. 여순사건을 연구한 김득중은 반공주의가 남성성과 결합하여 여성의 몸을 동원함으로써 적대성을 고조시켰다고 분석한다. 당시 빨갱이의 이미지는 유혹하는 요부와 같은 여성화된 형상으로 나타나기 일쑤였는데 여간첩의 일화에도 이어진다. 유혹과 위험 그리고 정복이라는 서사는 남성화된 반공국가의 정화를 뜻한다. 여성화된 빨갱이의 정복은 “사회의 불온한 신체이자 성적 욕망의 대상을 제거하는 것”이고 이는 곧 “반공국가가 남성의 건강한 신체로 재창조되기 위한 의미작용의 순환”인 것이다.19 이로써 반공주의적 정체성은 건강한 국가와 남성 국민을 확고하게 세우는 기틀이 된다.


남성화된 정상국가 만들기 기획

빨갱이 담론은 이후 배제와 포섭의 정치를 수행하고 국민과 비국민을 구별하고 위계화하는 장치가 됐다. 동시에 이른바 ‘우리’를 조직하고 통합하며 사회적 동일성을 구축하는 기능을 수행했다. 그런데 1990년대에 오면서 빨갱이 담론은 점차 시민들 사이에서 발화되고 논박되었다. 반공주의의 직접적 위력은 약해졌지만, 사회적 낙인과 격리, 박멸의 기능은 지속되었다. 1990년대 이후 여성들이 빨갱이라고 지시된 경우는 어떤 상황일까? 군가산점 폐지와 관련된 경우이다. 1999년 헌법재판소가 군가산점제 폐지를 판결한 이후, 2000년대 초반 여성단체와 페미니스트에게 부여된 빨갱이라는 호명이다. 두 번째는 2005년 호주제 폐지가 결정되기 전까지, 특히 1998년 이후 2000년대 초반 호주제 폐지를 주장하는 페미니스트들에게 호명된 빨갱이이다. 세 번째는 최근 페미니즘적인 이슈를 주장하는 사람에게 빨갱이라고 지시되는 경우이다. 이는 어떤 특정한 사건이 아니라 페미니즘에 달라붙은 감정으로 페미니즘적인 내용을 말하는 사람을 지칭한다. 이를테면, 미투선언을 지지하는 사람에게 빨갱이라고 지시하는 경우이다.

호주제 폐지 운동 과정을 잠시 살펴보자. 호주제 옹호자들은 여성들을 ‘오줌 싸는 빨갱이년’이라고 힐난하며, 호주제를 폐지하면 “북한의 대남적화(가) 성공하여 대한민국(이) 공산화될 것”이라고 주장했다.20 호주제 옹호자들이 호주제 폐지 반대 집회를열고 여성들을 빨갱이와 결부시킨 수행은 가부장 감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호주제는 가부장적 질서를 지탱하는 제도이자 법적 근거로서 가부장의 위치를 단단하게 붙잡아 두는 질서였다. 그들이 거리에 나오도록 추동한 감정은 가정의 질서가 무너진다는 불안감이다. 이 불안감은 사회질서와 국가가 위태로워진다는 공포와 결합되면서 호주제 폐지를 주장하는 여성에 대한 분노를 야기했고, 그들이 결속하고 연대할 수 있었던 공공의 사회적 감정이 되었다. 불안이 자신의 삶에서 느끼는 모호한 것이라면, 공포는 적이라는 대상을 상정하면서 외부의 정치적 관계 안에서 만들어진다. 호주제 폐지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국가안보의차원에서 논함으로써 그들의 불안과 공포는 분단된 마음의 자장 안에서 애국적 행위라는 의미로 작용한다.

호주제 옹호자들의 서사는, ‘가족문화 파괴–사회타락–국가안보 위협’이라는 구도를 이룬다. 가족문화 파괴가 국가를 위험에 빠트리는 안보로 번역될 때, 이는 예외상황을 초래하며 분단된 마음 자장 안에서 전선을 형성한다. 호주제 폐지론자들은 결혼 지연과 이혼, 출산율의 저하를 초래한 책임이 있을 뿐 아니라 북한을 이롭게 하는 위험한 자들로서 적으로 설정되고, 이 전선은 내부 결속과 동질성을 구축한다. 가족문화 파괴가 도덕성이라는 프레임 안에서 이야기될 때, 그들의 발화는 정치적 올바름을 획득하고 반드시 수호해야 할 가치가 된다. 2012년 이후 발견되는 ‘종북페미(니즘)’라는 용어는 어떠한가? 여기서 종북은, 북한에 대해 가난하고 열등하다는 비합리적인 표상을 지닌 세대에게 ‘종북’은 사고능력이 떨어지는 ‘후진행위’라는 의미가 내재해 있다.21 그러니까 종북페미라는 용어는 합리적인 사고를 못하는 지능 낮은 여성을 뜻하는 것이다. 빨갱이 혹은 종북게이와 종북페미 명명은 현상적으로 진보정치를 반대하는 프레임에서 소비되지만,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혐오는 다양한 대상들 사이를 횡단하면서 남성화된 정상국가 만들기 기획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평화 페미니즘 관점으로 본다는 것

여성 혐오에는 서사가 있다. 가정이 남성화된 민족주의의 기본 토대라는 인식이 그 안에 있다. 오염으로부터 정화된 건강한 국가는 바로 이 전통적인 젠더 질서를 보존하는 가정을 토대로 세워진다. 근대국가가 생성될 무렵부터 건강함과 아름다움은 조화와 질서, 균형으로 여겨졌고, 이는 건강한 남성성 혹은 남성의 몸으로 상징됐다.22 이 서사에는 가정 해체와 젠더 질서의 균열이국가의 존망을 좌우하는 안보 담론으로 번역된다. 분단사회에서 국가안보는 모든 사항의 우선권을 발동하며 예외적 상황이라는 모드로 전환시킨다. 호주제폐지, 미투운동, 군형법상 추행죄, 차별금지법을 안보 문제로 환원하면 시급하고 절박한 국가 위기가 된다. 안보의 차원, 말하자면 국가를 위협하는 위험 요소를 제거해야 하니 페미니즘과 성소수자에 대한 공격적 전투는 당연한 애국적 행위로 의미화된다. 안보가 발화의 힘을 획득할 수 있는 것은, 혹은 발화의 알리바이가 될 수 있는 것은 남북한의 분단과 대적이라는 역사적 상황의 정치적 해석에서 온다. 분단은 안보 담론으로 번역되어 권력이 된다. 이를 당연한 관례와 문화로 여겨왔던 사회에서 빨갱이와 종북페미 호명이 분단을 소환한다는 것은 혐오가 바로 이 분단 권력에 기대어 작동한다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서사는 젠더화된 정상 국가 만들기 기획임을 드러낸다. 

오염으로부터 정화된, 무질서와 불균형으로부터 안정적인 국가 만들기 프로젝트는 전통적인 가정 가치가 보존되고 젠더 질서가 잡힌 사회 모델을 지향한다. 여성과 성소수자에 대한 빨갱이 혐오 발화는 이를 실현시키기 위한 전투이다. 반복적으로 이를 인용하고 공격적으로 전파하는 언행은 분단된 마음을 수행하고 분단을 호출하고 확증하며 지속시키는 효과를 낸다. 페미니즘으로 평화를 읽는다는 것은, 젠더 지형도 변화하고 반공 이념도 약해졌으나 여전히 남한 사회를 특정한 방식으로 움직이는 감정 구조를 드러내는 일이다. 분단된 마음이라는 이 감정 구조는 6·25전쟁의 기억과 분단사회에서 오랜 시간 구조화된 감정이다. 그런데 이 감정 구조는 젠더에 기대어 움직인다. 전쟁과 군사주의에 사로잡힌 이 틀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적대감과 혐오를 주조하는 이원화된 체제에서 탈주하는 것이다. 감정(여성성)과 이성(남성성)을 구별하고 위계화하는 경계를 넘어서는 일이다. 감정이 이 사회를 움직인다며 이를 드러내는 움직임, 이것이 평화정동이다. P



2. 이를 세밀하게 보여주는 글은 꽤 많다. 예를 들면, 전영선 (2018), “적대의 이미지와 기억으로 본 북한”, <문화와 정치>, 제5권 3호, 77-105쪽; 전진성·이재원 (편)(2009), 《기억과 전쟁》, 서울: 휴머니스트; 김성경 (2020), 《갈라진 마음들: 분단의사회심리학》, 서울: 창비 등이 있다.
3. Sara Ahmed(2004), The Cultural Politics of Emotion, New York: Edinburgh University Press.
4. 이명호(2015), “문화연구의 감정론적 전환을 위하여 : 느낌의 구조와 정동경제론 검토”, <비평과이론>, 제20권 1호, 113-139쪽.

5. 한상효(2018), “‘분단감정어 사전’ 개발 연구”, <통일인문학>, 제75집, 11~14쪽.
6. 김종곤(2018), “‘분단적 대성’의 역사적 발원과 감정구조”, <통일인문학>, 제75집, 5-32쪽.
7. Sam Keen(2004), Faces of The Enemy, New York: Harper & Row, p.51.
8. 카롤린 엠케(2017), 《혐오사회》, 정지인(역), 파주: 다산북스.
9. 신시아 인로 (2015), 《군사주의는 어떻게 패션이 되었는가?》, 김엘리·오미영(역), 서울: 바다출판사, 25쪽.
10. 마사 너스바움(2015),《혐오와 수치심》, 조계원(역), 서울: 민음사, 185-214쪽.
11. 석승혜·장안식(2017), “극우주의의 프레임과 감정 정치: 언어 네트워크 방법론을 통한 일베 커뮤니티 분석”, <한국사회>, 제18집 1호, 3-42쪽.
12. 홍민(2015), “분단의 사회-기술적 네트워크와 수행적 분단”, 동국대학교 분단/탈분단연구센터 엮음,《분단의 행위자-네트워크와 수행성, 파주:한울, 80~121쪽, 83~92쪽.
13. 김홍중(2009), 《마음의 사회학》, 서울: 문학동네, 44~45쪽.
14. 카롤린 엠케(2017), 《혐오사회》, 정지인(역), 파주: 다산북스, 23쪽.
15. 강성현(2013), “아카와 빨갱이의 탄생”, <사회와 역사>, 제100집, 65쪽.
16. 김득중(2009), 《빨갱이의 탄생 : 여순사건과 반공국가의 형성》, 서울: 선인.
17. 박찬모(2016), “‘빨갱이’와 이데올로기적 환상 : 여순사건 ‘반란실정조사반’의 기록과 수치를 중심으로”, <감성연구>, 제12집, 61-96쪽.
18. 김득중(2009), 《빨갱이의 탄생 : 여순사건과 반공국가의 형성》, 서울: 선인, 434~436쪽.
19. 강성현(2013), “아카와 빨갱이의 탄생”, <사회와 역사>, 제100집, 88쪽.
20. 정통가족제도범국민연합, 2003.10.4., 민법중개정법률(안) 입법예고에 대한 의견서; 고은광순(1999), 《어느안티미스코리아의 반란, 서울: 인물과 사상사.
21. 정정훈(2014), “혐오와 공포 이면의 욕망: 종북 담론의 실체”, <우리교육>, 3월호, 98~99쪽.
22. 모스, 조지(2004), 《내셔널리즘과 섹슈얼리티》, 서강여성문화연구회 옮김, 서울: 소명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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