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호/2022.06][이슈] 경합적다원주의, 평화로가는길

평화저널 플랜P
2022-08-26

                                                                                                                                               강혁민(플랜P 편집위원)


대학 시절 종교다원주의에 깊이 심취한 적이 있었다. 주머니 사정이 그리 변변치 않았는데도 틈날 때마다 서점에서 내로라하는 학자들의 책들을 사서 읽었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흥미롭게 읽었던 책은 폴 니터의 『예수와 또 다른 이름들』이었는데, 보수적인 신앙은 아니라도 전통적인 신앙생활을 해 온 나로서는 그 책의 내용이 그야말로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또 다른 이름이라니. ‘오직’이라는 수식어에 더 편안함을 느꼈던 나로서는 ‘다른’이 의미하는 바를 온전히 받아들이거나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당황스러움도 잠시, 나는 곧 다원주의에 깊이 침잠해갔다. 다원주의를 향한 비판적 시선을 감내한 채 아웃사이더를 자청했다. 사실 크게 괘념치 않았다.

돌이켜보면 내가 종교다원주의에 흥미를 느낀 것은 다원주의 그 자체에 대한 관심이었다기 보다는 기존 종교들의 자아도취적 경전 해석과 획일화된 신앙, 사유의 형태를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정형적인 틀 속에서 사고가 뻗어 나가지 않자 사유의 도피처와 같았던 다원주의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던 것이다. 사유의 자유로움은 확실히 나를 더 풍성하게 했다. 다원주의는 본질성과 획일성을 지양하고 ‘다름’과 ‘차이’를 두 팔 벌려 환영했다. 신이라는 근본적 실체를 거부하거나 폐기하지 않으면서 이를 중심으로 서로 달리 이해하는 사람들의 체험과 고백이 내게는 사유의 인공호흡기와 같았다. 신은 그런 다양함에 더 어울리는 것 같았다. 신에게 이르는 다채로운 길! 나는 그것이 너무나 좋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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