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호/2022.09][전문공개 / P-word 특집] 기억의 장소에 "다음에 또 오게" 하려면]

평화저널 플랜P
2022-09-25

 9호 특집글 인쇄본에 교정 오류가 있어 바로잡아 홈페이지에 다시 전문 공개합니다.           

                                                                                                                        이동기(강원대학교 대학원 평화학과 교수)

      1. 2018년 본과 2019년 고성

2018년 8월 초 독일 서부 도시 본(Bonn: 통일 전 서독의 옛 수도)에 위치한 ‘독일연방공화국 역사의 집’(이하: ‘역사의 집’)을 방문했다. 당시 나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중장기발전계획 용역 연구를 세 명의 연구자들과 함께 수행했다. ‘역사의 집’은 현대사박물관의 모범으로 손꼽힌다. 우리는 그곳 핵심 인물들과 면담을 통해 눈으로는 가질 수 없는 정보를 챙기고자 했다. 미리 준비한 질문을 중심으로 유익한 대화가 오갔다. 대화를 마치며 나는 불쑥 마지막 질문으로 첫 질문을 다시 던졌다. “이 박물관의 목적은 무엇인가요?” 두 시간 동안 친절히 답했던 ‘역사의 집’ 부관장은 “다음에 또 오게 하는 것이죠! 여러분들도 다음에 또 오세요.”라며 유쾌히 맺었다.


2019년 가을 아직 강릉원주대학교에서 일할 때 나는 학생들 20여명과 함께 속초와 고성을 1박 2일로 답사했다. 지금도 이어지는 ‘동해평화로’의 시작이었다. 학생들은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분단의 경계를 보며 신기해했지만 DMZ박물관의 전시를 보고는 무심했다. 제진역에서는 좀 달랐다. 제진역은 사실 ‘유령역’이다. 보통 유령역은 과거에 사용했지만 여러 이유로 방치해 현재 폐허가 된 장소를 의미한다. 한국 최북단의 제진역은 남북한 주민 왕래와 교역의 미래를 위해 최신식으로 만들어 화사하지만 현재 사용하지 못해 공허가 지배한다. 지금은 ‘평화열차 체험’이라는 이름의 기괴한 연극 공연장으로 바뀌었지만, 2019년 11월에는 아직 분단의 냉기와 단절의 고요가 마음과 몸을 붙들었다. 통일부 직원인 안내자는 역의 플랫폼에서 북쪽을 가리키며 10km 남짓 가면 북한의 감호역이 나온다고 말하고는 군 경계상의 이유로 그 방향으로 계속 걸어가서는 안 된다고 주의를 주었다. 하지만 학생들은 자석에 끌린 듯 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한 학생이 내게 다가와 말했다. “선생님, 근데 기분이 좀 이상해요.” 철길 북쪽 먼발치에서 마치 탁구 치듯 말을 주고받으며 돌아오던 또 다른 학생들 둘은 내 앞을 지나며 말했다. “근데 이상하지 않냐? 우리 그동안 이런 얘기 한 적 없는데, 여기서는 이게 되네. 재밌는데.” 이윽고 서로 다른 세 입에서는 같은 소리가 나왔다. “다음에 또 와야겠어요!”

    

2. 폭력 공간에서 기억 장소로* 

* 이하 2장과 3장, 4장의 일부 내용은 필자의 기 발표 논문 <‘민주인권기념관’ 건립 구상: 10개의 테제>, ≪기억과 전망≫ 40, 2019.06, pp. 279~315와 겹친다.

역사적 비극과 고통의 ‘사건 현장’이 ‘기억의 장소’(site of memory)로 바뀌고 있다. 지구 도처에서 진행되는 보편적인 ‘기억문화’(culture of remembrance) 양상이다. 1990년대 초 독일에서 어렵게 나치 과거사 청산 맥락에서 홀로코스트 추모기념관과 현대사박물관들이 들어섰다. 2000년대에 들어서자 유럽 전역에서 홀로코스트 뿐만 아니라 양차 세계대전과 냉전, 공산주의 인권유린을 주제로 다룬 기억의 장소 건립이 붐을 맞았다. 최근 10년 동안에는 유럽 곳곳에서 식민 폭력과 제국주의 범죄를 기억하고 성찰하는 기념관과 기억의 장소들이 건립되고 있다. 미국도 인종주의 역사를 다루는 기념관들이 건립되었고, 남미는 인권유린의 폭력사(history of violence)를 기억하는 공간들이 넘친다. 21세기 문명 생존과 평화의 운명은 망상적 유토피아에 물든 총체적 변혁 강령이나 고전 철학과 사상의 몇 문장을 되새김질하는 인문학 놀이가 아니라 지난 시기 넘쳤던 피 냄새와 죽음의 통곡을 감당하며 국가폭력과 문명 파괴의 재생에 맞설 버팀목을 세우는 일에 달렸기 때문이다. 전통문화의 과잉 해석이나 국민국가의 ‘성공의 역사’ 자랑이 아니라 정치폭력과 국가범죄, 전쟁과 적대의 역사에 대한 비판적 대결이 민주주의 사회의 시민들이 공유하는 집단적 역사의식이자 ‘문화적 기억’(cultural memory)으로 발전하고 있다.

특히 국가권력의 횡포와 결함이 빚은 주민의 고통과 비극은 민주주의 사회가 공유하고 전승해야 할 집단기억의 핵심 대상이자 ‘사회적 자기인지’(흔히 ‘정체성’이라고 불렀던)의 중심 내용이다. 국가폭력은 단순히 비판하고 극복해야 할 상처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정치공동체는 그것에 정면으로 맞서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사회적 상호작용과 집단 경험을 갖는다. 그것은 공동체가 긍정적 가치를 찾아 자신을 갱신할 수 있는 자산이다. 공동체 구성원들은 국가폭력으로 인한 고통과 비극의 사회적 인지와 문화적 재현에 함께 참여함으로써 새로운 정서적 유대와 감정적 결속을 경험하고 자유와 인권의 가치를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공동체는 그런 신뢰 (재)회복과 가치 (재)전유 과정을 통해 민주주의를 추상적인 규범이나 엄숙한 ‘헌정질서’로서가 아니라 시민 개인의 생명과 권리, 자유와 안전의 문제로 인식할 수 있다. 21세기 지구 전역에서 등장하는 폭력 공간의 기억 장소로의 전환은 바로 그와 같은 공동체의 집단적 갱신과 경험을 매개하며 공공역사(public history)의 주요 과제로 발전했다.

한국에서도 폭력 공간과 적대 현장을 기억 장소와 평화 교육의 장으로 바꾸는 사업들이 도처에서 일고 있다. 남북 경계선의 주요 지역에서 기왕의 안보관광지들은 평화답사 장소로 전환을 실험 중이다. 새로 평화박물관이나 평화교육 공간을 준비 중인 곳도 많다. 물론, 기획안과 계획서들을 보면, 그것이 평화로 위장한 신종 토건사업인지, 아니면 ‘평화 연극’장 건축 작업인지 알 길이 없다. 아마 둘 중 하나이거나 둘 모두다.

한편, 식민폭력과 국가폭력 및 민주화운동의 역사 현장에도 기억 공간을 여러 곳에서 준비 중이다. 예정에 따르면, 2023년 6월에는 1970/80년대 독재 정권의 대표 폭력 공간이었던 남영동 대공분실 자리에 민주인권기념관이 들어선다. 계획에 따르면, 2022년까지 광주에는 5.18 민주화운동을 기억하고 전승하는 기념박물관이 들어서야 한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와 ‘옛전남도청 복원추진단’이 수년째 각기 그 사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우여곡절만 쌓였고 방향상실만 보인다.

흔한 오해와는 달리, 여야 간 권력 교체가 주요 장애가 아니다. 폭력사에 대한 비판 의식과 평화 갈망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 너무 많다. 건립 과정에 뛰어든 기관과 단체 및 나름 선의를 지닌 행위 주체들은 역부족을 절감하며 드잡이를 하다 만신창이가 된다. 그래서 ‘국제 공공범죄 희생자 기념박물관 위원회’(International Committee for Memorial Museums in Remembrance of the Victims of Public Crimes : ICMEMO, https://icmemo.mini.icom.museum/)는 이미 2012년 12월 말 기념박물관의 원칙과 활동 방향에 대해 10개 항의 ‘선언’(Charter)을 발표했다. 세계 전역에서 유사한 문제와 도전들이 생겼기에 기왕의 경험에 기초해 전문가들이 지혜를 모았다. 다원적이고 비위계적인 토론의 중요성, 학문적 전문성의 존중, 의식화 교육 금지 등 꽤 유익하다. ‘장소’와 공간에 대한 내용은 소략해 여기 보탠다. 


3. 장소의 진본성

폭력은 구조나 문화가 아니라 행위다. 폭력은 행위자들을 필요로 하고, 행위는 특정 시간과 공간에서 발생한다. 시간은 먼지처럼 흩어져 기억 저편에서 유동하지만, 공간은 남아서 ‘말한다.’ 기억의 장소는 주로 폭력의 가해와 피해, 죽음과 고통의 현장에서 건립되기에 바로 그 ‘말’을 올리고 전해야 한다. 범죄를 다루는 형사들이 ‘현장에 답이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역사 현장의 보존’은 기념박물관의 기본 임무다.

특히 국가폭력의 현장은 사건 직후부터 폭력의 가해 기구나 주범 또는 종범들에 의해 파괴되거나 변조되거나 지워지기 쉬웠다. 그렇기에 아직 남겨진 현장의 보존은 기념박물관의 일차적 존재 이유다. 기념박물관은 전시와 전시 설명을 통해 역사를 보여주기 이전에 이미 공간과 장소, 건물과 사물을 보존함으로써 역사를 전한다. 장소와 공간과 건물은 그 자체로 이미 전시다. ‘그 후’의 사람들이 장소와 공간을 기억해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지만, 장소와 공간은 스스로 기억을 생산하고 의미를 전한다. 구체적 장소와 물리적 공간을 통해서 비로소 폭력 행위의 시간 계열과 인과관계가 명료해지고 그것에 대한 인식과 기억, 상상과 전승이 가능해진다. 행위자들은 특정 사건이 일어났을 때 항상 특정 장소와 공간에 존재했으며, 한 장소와 공간에서 다른 장소와 공간으로 이동했다. 장소와 공간은 행위의 진실성 여부 만이 아니라 행위의 양상과 정도, 성격과 밀도, 심지어 행위자들의 감정과 감각을 인지나 상상 가능하도록 이끈다.

장소와 공간은 포렌식(forensic: 법과학적 증거에 기초한) 진실, 즉 사법적 진실을 넘어 ‘서사적 진실’과 ‘역사적 진실’의 문을 연다. 국가폭력의 경우 대부분 가해 도구나 관련 기록들이 사라져 사법적 진실을 얻기 어려울 때도 많다. 게다가 사법적 진실의 증거들이 존재해도 그것만으로는 폭력 행위의 실상과 피해자들의 고통이 충분히 전달되기 어렵다. 장소와 공간은 포렌식 진실을 보충하되 그것에 갇히지 않고 또 다른 폭력의 진실들을 갖도록 만드는 고리다.

장소와 공간은 그렇게 역사의 ‘진본성’(authenticity)을 보장한다. 기억 장소와 공간은 바로 그 진본성에서 출발한다. 진본성은 왜곡이나 변조가 없는 사실 인식을 말한다. 진본성은 고유하고 특별하며, 직접적이고 구체적이며, 근원적이고 순수하며, 진실하고 충실한 인지와 경험을 제공한다. 기억 장소에서 진본성이 지니는 의미를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먼저, 장소와 공간, 그리고 그것과 연관된 건물과 사물은 희생자의 유가족과 피해자들에게 과거와 현재를 잇는 연속의 의미를 지닌다. ‘악마의 시간’은 지났지만, 그 시간을 증명하는 ‘악마의 공간’은 남았다. 장소와 공간은 과거와 현재를 잇고 역사와 의미를 엮는 명증한 연결 고리다. 폭력사의 장소는 희생자의 마지막 생존 공간이고 살해 현장이기에 희생자 유족들에게는 ‘그대로 보존’되어야 할 의미를 지닐 수밖에 없다. 생존 피해자의 경우에도 폭력사의 장소와 공간은 시간이 멈추거나 자주 돌아가도록 끄는 곳이다. 때로는 트라우마로 인해 다시 방문하기 어려운 장소이기도 하다. 장소와 공간과 건물에 대한 희생자 유가족과 피해자들의 인지와 해석은 존중되어야 한다. 그 인지와 해석들이 경합할 때는 그 차이와 경합의 배경과 맥락도 전달되어야 한다. 그것 또한 폭력 발현 장소의 진본성을 보충한다.

둘째, 비극적 역사 발현의 장소와 공간 및 건물은 이성적인 지식 전달이나 설명으로는 창출할 수 없는 감각의 경험과 감정의 동요를 제공한다. 그 폭력사를 익히 알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기억의 장소를 직접 방문하는 핵심 이유는 그 사건 현장이 빚어내는 ‘아우라’를 체험하고픈 갈망 때문이다. 즉, 특별하고 강렬한 ‘진짜 과거’에 몸과 마음을 침잠하려는 요구가 존재한다. 기념박물관은 그것에 적극 조응해야 한다. 감정의 순도와 진실성이 흐려진 사회문화 조건에서 역사 현장은 가해(자)의 야만과 무치(無恥), 피해(자)의 고통과 공포에 ‘진짜 감정’을 가질 수 있는 흔치 않은 경험 공간이다.

셋째, 기억 장소와 공간의 진본성은 제 생애사가 폭력사와 직접 관련이 없는 사람들 그리고 그 범죄가 낯설 수밖에 없는 청년 세대들과 이주민들에게도 역사로 들어가는 통로를 제공한다. 역사 현장의 아우라와 진본성은 그들에게도 사건의 무게를 전하고 폭력사에 대한 관심을 유발하며 성찰의 기회를 돋는다. 특히 그것은 온갖 종류의 예술적 재현, 즉 복제와 가공을 통한 추상적 상상이 지배하는 현실에서 물질적 경험과 명료한 감각을 통해 과거에 직접 접촉 내지 진입하도록 만들고 범죄와 고통에 대한 구체적 인지와 주체적 체험을 갖도록 돕는다.

마지막으로 사건 현장은 폭력사의 변호와 부인에 맞서 가해 범죄의 사실성과 심각성의 물적 신뢰를 강화한다. 폭력사의 기억 장소와 공간은 가해자들을 비롯한 역사 부인 세력의 거짓과 왜곡, 변명과 정당화를 논박할 수 있는 강력한 근거다. 장소와 건물은 가해 행위 과정에 대한 구체적 판타지를 가능케 만든다. 장소와 건물은 가해를 위한 목적으로 그 공간이 실제 사용되었음을 명료히 지시한다. 그것은 진본성의 신용과 권위를 통해 폭력사에 대한 집단기억의 사회적 합의와 도덕적 무게를 강화한다.


4. 장소의 간격 

한국 사회 지난 시기 기억의 장소와 관련해 등장한 ‘원형 보존’ 논쟁은 사실 그 진본성 문제 때문이었다. 남영동의 민주인권기념관과 광주의 옛 전남도청 기념관 건립도 모두 ‘원형 보존’을 둘러싸고 논쟁했고 여전히 진행 중이다. 기억 장소의 핵심 과제가 역사의 진본성을 보장하고 강화하는 것이라면 ‘원형을 보존해야 한다’는 요구는 정당하고 필요하다. 다만, 그 의미를 명료히 이해하려면 두 가지가 보충되어야 한다.

먼저, 어떤 곳의 사건이든, 어떤 고통과 비탄이 깃들었던, 남겨진 ‘역사 현장’은 기본적으로 ‘원형’(original condition)이 아니다. 폭력 행위 후에 가해자들이 공간과 장소와 건물을 변조하거나 개조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우여곡절을 거쳐 나중에 기억의 장소로 넘겨진 상태는 이미 ‘원형’이 아니다. ‘원형보존’이라고 말할 때의 그 ‘원형’이 공간과 건물이 건립되었을 때의 모습인지, 사건의 발생 시점의 모습인지, 아니면 최종 인수 시점 상태의 모습인지는 항상 논쟁 주제다. 게다가 주요 사건들의 발생 시기가 조금씩 다르다면 ‘원형’을 확정 짓는 것은 더욱 어렵다. 각 시기별 ‘원형’들이 파편적으로 병존할 때 어떻게 ‘원형’을 보존하고 복원할지는 매우 난감한 문제다. 순수한 의미의 ‘원형’을 보존하거나 복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실 사건 발생 당시의 장소와 공간의 모습을 ‘원래 그대로’ 보여주는 것을 전제로 삼는 ‘원형보존’ 개념은 성립 불가능하다. 이미 사건 발생 시의 건물과 시설은 말할 것도 없고 장소와 공간도 변화를 겪었다. 주변 환경과 풍광도 변했다. 어떤 방식으로든 이미 사라진 ‘원형’을 보존하기도 어렵고, 방문객을 위한 기억의 장소로 만들면서 그것을 다시 ‘원형’대로 복원하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이를테면, 남영동의 경우 고문 행위의 실제 공간과 장소는 현재의 ‘보존’ 상태처럼 그렇게 깨끗하거나 정돈되어 있지 않았고 조명과 온기를 갖고 있지도 않았다. 1980년 5월 27일 새벽 계엄군이 짓밟은 전남도청의 ‘원형’으로는 애초부터 방문객을 맞이할 수가 없다. 실제 사건을 겪은 역사 증인들은 그 장소와 공간이 ‘당시’와 ‘지금’ 얼마나 다른지를 항상 말한다. 그것 자체가 답사 안내의 중요한 일부다. 그렇기에 사건 당시의 ‘원형’을 고집하는 것은 방문객을 맞이할 기념박물관에는 부적당하다. 기념박물관의 기능과 목적에 맞게 장소와 공간과 건물은 다시 구성되고 재현되고 개조되고 보충되어야 한다. 그래서 원형 보존이 아니라 ‘역사 현장의 보존’이라고 말해야 한다.

둘째, ‘역사 현장의 보존’은 기본적으로 사건의 주요 행위와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연관을 갖는 곳에 집중해야 한다. 가해자들의 폭력 행위 선택과 결정, 또는 희생자와 피해자의 고통과 죽음에 직결된 곳이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인권유린과 국가폭력을 준비하고 실행한 공간과 건물은 조사와 연구와 검토를 거친 뒤 최대한 ‘역사 현장’으로 보존하고 복원해야 한다. 그러나 ‘역사 현장’의 모든 장소가 다 그것에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세계 주요 기념박물관은 ‘역사 현장’을 복원하고 재현하지만, 그것은 대부분 가해 행위와 피해가 발생한 장소와 공간에 집중한다. 기념박물관의 기본 임무인 ‘역사 현장의 보존’을 곧장 ‘모든 역사 흔적의 원형보존’으로 이해할 수는 없다.

1990년대 독일과 유럽에서 홀로코스트와 공산주의 독재의 가해 현장을 기념박물관으로 만들면서 등장했던 ‘원형’ 개념은 학문적 논의 과정에서 뒤로 물려졌다. 오히려 ‘원형’ 보존과 복원의 불가능성 또는 ‘원형’(유지)에 대한 망상의 극복이 그 후 기념박물관 논의의 출발점이 되었다. 독일에서 기억과 기억의 장소 연구를 개척한 알라이다 아쓰만(Aleida Assmann)의 말대로, 우리는 “희생자의 장소와 방문객의 장소 사이의 간격과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 그것은 폭력사의 기억과 전승을 막지 않는다. 오히려 두 장소의 차이를 인정하고 의식함으로써 방문객은 역사의 진본성에 더욱 민감해지고 스스로 감각을 세우고 고유한 판타지를 갖는다. 방문객들을 역사 인식의 수동적 수용자로 전제하지 않아야 한다. 폭력 범죄 현장으로서의 장소와 사후 조성된 기억의 장소 사이의 간격과 차이의 인정이 오히려 방문객들을 역사 인식과 성찰의 상호작용으로 이끄는 방식이기도 하다.

그 말은 역사의 현장을 방문객을 위해 ‘변조’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사건 현장을 기억의 장소로 만들 때는 그냥 가해자들이 남긴 장소와 공간을 ‘원형’으로 여겨 그대로 보존하는 방식이 아니라 조사와 연구, 숙의와 토론을 거쳐 현재와 미래의 공간으로 만들어나가는 것이 필요함을 뜻할 뿐이다. 가해자들이 남긴 것을 ‘그대로 두는 방식의 원형 보존’이 아니라 그 현장을 기억의 장소로 복원하고 활용하기 위해서는 현재와 미래와 연결된 문화적 실천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사건 현장이 ‘원형대로’ 그대로 재현되거나 전승될 수 없음을 인정하면, 오히려 보존하고 복원해야 할 것과 새로운 용도와 목적으로 개조하고 보충할 것을 구분하는 과정이 등장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비로소 폭력사의 현장은 기억의 장소로 새롭게 탄생하는 것이다. 그것은 진본성을 살리는 것과 충돌하지 않는다. 장소와 공간의 역사적 진본성을 살리고 부각하기 위해서 개조와 보충이 필요하다.

한편, ‘장소의 간격과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메운다며 기괴한 예술품과 장치들을 비치하는 일이 잦다. 진본성의 관점은 장소와 공간, 건물만이 아니라 전시와 교육에도 그대로 적용되어야 한다. 이때 역사의 진본성을 드러내는 사료나 사물, 시청각 자료가 아닌 가공물과 예술 작품의 대용은 피해야 한다. 이를테면, 재현이 쉽지 않은 고문의 역사를 실감하게 한다고 밀랍 인형들이 “으악! 으악!” 외치도록 만들거나 체험해보라고 고문 도구들을 비치하는 어리석은 일은 그만두어야 한다. 고문은 체험은커녕 형용도 전달도 불가능하다. 그것이 고문의 진본성이다. 또 비장한 음악을 크게 틀어 방문객들의 감정을 조작하고 강제하려는 일도 그만두어야 한다. 독재자들이 하던 집단감정 조작 수법이 민주주의나 인권, 평화의 이름을 내세운 기억의 장소와 기념박물관에서 버젓이 사용되고 있다.

역사의 진본성을 침해하거나 역사의 사실적 재현을 대체하는 방식의 예술 가공과 감성 조장은 경계해야 한다. 한국의 여러 기억 장소는 예술 가공과 상상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넘쳐서 문제로 보일 지경이다. 예술을 통한 폭력사의 재현이 불필요하다는 말이 아니다. 그것의 위치나 역할을 따로 마련해야지 역사의 사실적 재현을 방해하며 역사 진실을 대체하는 방식으로 활용될 수는 없다. 장소와 공간의 역사 진본성이 전시로도 연결되어야 한다.


5. “다음에 또 오세요!”

지난 2년 반 동안 코로나로 인해 기억의 장소나 역사박물관의 방문에 제약이 많았다. 나쁜 전시가 묻혀서 다행이지만 좋은 전시가 충분히 알려지지 않아 아쉽다. 그새 국내에서 가장 호평을 받았던 전시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2020년 5월에서 10월까지 마련한 기획전시 <5월, 그날이 다시 오면>이었다. 방문객들의 눈을 끌었던 전시품 중 하나는 1980년 5월 30일 밤 11시 40분에 기록된 ‘시민전화’ 기록물이었다. 


<출처: 대한민국역사박물관 2020년 특별전 ‘오월, 그날이 다시오면’>

1980년 5월 27일 광주와 전남의 민주화 운동이 계엄군에 의해 무참히 진압되었다. 계엄군은 광주를 점령한 직후 “폭도”들로부터 “평온한 일상”을 되찾았음을 보이기 위해 전남도청 앞 분수를 다시 켰다. 항쟁 기간 동안 시민들의 집회 장소이기도 했던 분수대에서 마치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이 분수가 화사하게 올라왔고, 그것은 방송을 통해 전국에 중계되었다. 광주에 사는 “35세가량의 여자”는 5월 30일 밤 11시가 넘도록 힘들어하다 민원 전화로 “당분간만이라도 도청 앞 분수대를 정지시켜” 달라고 부탁했다. 그 전시 자료를 보던 많은 방문객들은 몸을 떨었다.

이 전시 자료는 위에서 말한 진본성의 중요성을 증명한다. 그것은 5.18 민주화 운동의 한 단면도 실감 있게 전달하지만 분수대라는 장소도 여러 각도에서 비춘다. 분수대는 1980년 5월 23일부터 26일까지 매일 열린 ‘범시민 궐기대회’의 투쟁 장소이기도 했지만, 계엄군에게 분수는 ‘정상 회복’의 상징이었다. 그런데 그 분수의 물줄기는 시민들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굴욕과 죄책감의 검은 비였다. 진본성을 살린 기억 공간과 전시는 그렇게 우리에게 계속 말을 건다. 5.18 민주광장의 분수대를 보면서 우리는 시민들의 함성과 군인들의 구령뿐만 아니라 1980년 5월 30일 밤 한 광주 시민의 비탄을 들을 수 있다. 물론, 유감스럽게도 지혜와 성찰 능력은 없는데 만용과 과시 욕망은 많은 사람들이 어디든 있다. 권력과 자본마저 챙긴 그들이 그 장소를 미디어 파사드 ‘빛의 분수대’로 변조했다. 기억의 장소에서 예술 재현은 역사의 진본성을 그렇게 계속 침해하고 있다. 

진본성을 살린 기억 장소와 박물관 전시는 그 어떤 가공물과 예술 작품 보다 특별한 자극과 진짜 감정을 갖게 만든다. “기분이 좀 이상”해지는 경험을 가지면 “다음에 또 오게” 된다. 규모로 위압하고 규범으로 주입하고, 예술로 조작하고 상품으로 장사하면 “기분이 좀 이상”해질 이유가 없다. 그것은 현대 사회와 일상문화에 널렸다. 더 크고 멋지고, 더 재밌고 자극적인 장소와 공간들을 찾아가지 폭력사의 기억 공간을 찾을 이유가 없다.

하지만 공동체 주민들의 일부나 다수가 겪은 폭력사의 진본성을 직면하면 무심한 일상에서 흔히 갖지 못하는 지적 자극과 감정의 동요를 갖는다. 가족이나 친구 사이에도 “그동안 한 적이 없는” 얘기들을 나누며 서로 놀란다. 사실 방문객들은 대개 심도 있는 역사 토론을 길게 하지 않는다. 역사에 대해 잠시 놀라워하고 묻고 답을 찾다가 금세 제 삶에 대해 얘기한다. 그런데 폭력사를 접하고 나오는 그 감정과 생각이 그 전과는 좀 다르다. 폭력사의 진본성을 접하며 방문객들은 유사한 느낌과 생각이 흐르는 것을 마주하며 감정의 코뮤니타스(communitas)를 경험한다. 

기억의 장소는 규범 전달이나 역사 설명으로가 아니라 그렇게 방문객들로 하여금 시간과 공간, 삶과 사람을 새롭게 경험하게 만든다. 폭력의 역사 현장을 기억의 장소로 만드는 일은 역사책이나 인권교재를 특정 공간이나 건물에 펼치는 것과는 다르다. 그것은 역사 속 인간의 야만과 파괴, 고통과 공포를 통해 감정과 생각의 새로운 발산과 발견, 인간적 상호작용과 특별한 소통 경험의 장소여야 한다. 기억의 장소가 공동체 주민들의 삶과 이야기들에 스며들어야 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 장소에 다음에 또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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